미얀마 로힝야족 탄압 방치, 아웅산 수지는 변했는가?

최현주 기자 | 기사입력 2017/10/21 [05:51]

미얀마 로힝야족 탄압 방치, 아웅산 수지는 변했는가?

최현주 기자 | 입력 : 2017/10/21 [05:51]

미얀마 군의 로힝야족 탄압을 대하는 아웅산 수지의 태도를 비난하는 여론이 전세계적으로 거세다. 이에 대만 언론매체 아이시뉴스(eyeseenews.com)는 논평을 내놓았다. 아래는 아이시뉴스 위쯔샨(于志申)기자의 글을 번역한 전문이다.

 

미얀마 군정부 시대, 서양(유럽과 미국)의 매체에게 정치민주 추진의 상징으로 비춰지던 아웅산 수지가 최근 로힝야족 숙청 문제로, 서양 주요 매체에 의해 마구 비난받고 있다. 똑같은 한 사람에 대한 앞뒤 평가가 이처럼 큰 것이다. 도대체 아웅산 수지가 권력을 가지면서 부패한 것인가, 아니면 서양 주요 매체의 관찰 각도가 변한 것인가? 이는 매우 연구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문제이다.

 

만약 미얀마 역사에 대한 약간의 이해가 있다면 당연히 아웅산 수지의 부친, 바로 “미얀마의 국부”로 불려지는 아웅산장군을 알 것이다. 그는 2차 대전 때 미얀마의 독립을 위해 일본과의 협공으로 미얀마 내 영국 군대와 싸웠는데, 후에는 일본과의 협력으로는 미얀마의 독립을 이룰 수 없다고 여겨 영국과 다시금 협의해 동맹군대와 협력해 일본군과 전쟁을 벌였고, 결국 미얀마의 독립을 이뤄냈다. 이로써 미얀마의 독립 목표를 이룰 수만 있다면 아웅산 장군은 사실 어떤 나라와도 협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맥락으로 볼 때, 아웅산 수지는 부친의 뜻을 이어받아 미얀마 국민의 이익을 증진시키시는 방법을 모색했고, 우선적으로 국정부 통치시대 때 민주정치를 끊임없이 추진시켰다. 사실 이 때문에 연금 상태에 처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영국 국적인 남편이 중병에 걸렸을 때마저도 문병하기 위해 미얀마를 떠나려 하지 않았다. 다시 미얀마로 돌아올 수 없을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군정부의 선거에 대한 제약을 완화시켰으며, 2015년 대선에서 아웅산 수지의 전국민주연맹이 대승을 거뒀다. 곧 이어 2016년, 미얀마 외교부장과 총통부사무부장 및 국무사정(총리에 상응하는 직책)을 역임했다.

 

이 때문에, 아웅산 수지가 로힝야족이 당한 종족숙청 문제를 처리한 방식 또한 반드시 이러한 맥락에 놓고 봐야만 그녀의 사상에 근접한 관찰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즉, 로힝야족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가에서, 아웅산 수지가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은 미얀마인의 이익이었다. 기타국가들의 견해는 그 생각의 우선순위에 둔 적이 없다. 그래서 미얀마인이 로힝야족을 어떻게 대하는가는 아웅산 수지가 어떠한 방식으로 로힝야족을 대하는가에 직접적 영향을 끼쳤고 너무나 당연하게 드러났다. 왜냐면 미얀마인의 생각에선, 정부군대는 로힝야족 유격군의 공격에 반격한 것이고, 아웅산 수지는 미얀마인의 안전을 지켜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웅산 수지는 그녀가 민주정치를 밀고나가든, 로힝야족 문제를 처리할 때든 언제나 미얀마인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생각은 결코 변한 적이 없다.

 

서양 주요 매체의 아웅산 수지와 미얀마에 대한 관찰 각도 또한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군정부 시대였든, 현 아웅산 수지 정부든 간에, 서양 주요 매체는 서방에서 시작된 민주, 인권 등의 가치기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아웅산 수지가 미얀마의 민주개혁을 추진한 것이 서방의 가치기준에 부합했기에 서양주요매체가 그녀를 칭송했고, 아웅산 수지가 미얀마인의 입장에서 로힝야족 문제를 처리했기 때문에 罗西亚 난민이 생겨났기 때문에 서양주요매체가 그녀를 지적하는 것이다.

 

너무나 이상한 것은, 아웅산 수지는 결코 권력에 의해 부패한 적이 없고, 서양주요매체의 관찰 각도 역시 변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서양주요매체가 아웅산 수지에 대한 평가에는 이렇게 큰 차이를 보이는가? 이는 기타국가에 대한 서양주요매체의 관찰이 현지의 관점에 전혀 근접하지 않고, 종종 서방의 가치 기준을 유일한 평가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난받는 측 역시 받아들이지 않으니, 각자 자기 입장을 주장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당연히 우리는 미얀마 정부의 로힝야족 문제 처리 방식이 보편적 인권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일에 대한 판단은 반드시 더욱 깊고도 넓은 각도로 봐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인권의 각도로 바라볼 뿐 아니라 미얀마의 역사와 서방식민지통치자의 운영 등을 종합해, 다양한 각도로 생각해야만, 로힝야족 문제에 대해 가장 완벽하고 정확한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위 글은 본지의 편집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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