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민주화운동에 대한 소고

박현서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1/04/15 [16:22]

미얀마 민주화운동에 대한 소고

박현서 칼럼니스트 | 입력 : 2021/04/15 [16:22]

미얀마의 군사 쿠데타로 인한 미얀마 시민들의 저항은 오늘도 지속되고 있다. 확인된 숫자만 700명 이상, 정의롭고 용감한 시민들이 쿠데타군에 맞서 희생당했으나 그들이 저항을 지속할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은 아웅산 수치로 대변되는 미얀마의 민주 항쟁 역사다.

 

흔히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 표현한다. 우리는 미얀마 시위를 보면서 1980년 광주 민주 항쟁을 떠올리지만 광주 항쟁 전에도 이 땅에는 일일이 나열할 수조차 없는 수많은 민주 시위가 있었고 무수하게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다. 광주 항쟁 이후에도 1987년 6.29선언까지 역시 많은 이가 값진 피와 목숨을 희생하면서 민주주의를 쟁취했다는 사실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처절한 대가를 치르면서 비로소 쟁취한 한국 민주주의 역사를 비추어본다면 작년 홍콩 민주화 사태가 결코 성공할 수 없었음은 자명했다.

 

홍콩은 중국으로의 반환 이전 영국의 통치하에 민주적인 정치체제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었기에 민주화 투쟁의 역사가 일천했다. 결정적으로 홍콩은 중국의 공식적이고 합법적인 영토이기에 외부 세력이 홍콩의 민주화 시위에 힘을 보태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독재 정권 당시의 한국과 현재의 미얀마 쿠데타 군부가 서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과는 그 차이가 엄청나다. 큰 대가를 치르고 미얀마가 쿠데타 세력을 물리쳤다 하더라도 미얀마 대중이 가야 할 길은 멀고 험하다.

 

1378년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는 역사상 최초의 노동자 봉기로 알려진 ‘치옴피의 난’이 일어났다. 당시 피렌체는 자치 도시로서 대상인들과 부자들의 조합인 대(大)아르테와 중소 상인들의 조합인 소(小)아르테가 연합해 도시를 운영하며 정부의 수반을 뽑았다. 그러나 많은 기득권과 정부의 수반을 소수의 대아르테가 독점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작동하고 있었다.

 

치옴피란 양모를 손질하는 노동자들을 일컫는 용어로서 피렌체에서 가장 힘든 일을 하고 있었지만 터무니없는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도 조합이 없어서 그들의 의사을 표현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 치옴피들이 봉기를 일으키자 평소 대아르테에 불만이 가득했던 소상공인들이 연합하여 대아르테를 몰아내고 대대적인 개혁정책을 시행했다.

 

그러나 소상공인들과 치옴피들은 사회적 기반이 달랐기에 개혁의 방향과 속도에서 입장 차이는 컸다. 더군다나 이러한 내부 갈등을 봉합할 수 있는 지도자가 그들에게는 없었다.

 

정말로 중요한 사실은 여태껏 누려왔던 모든 기득권을 빼앗긴 대아르테는 개혁 세력들의 갈등을 예의주시하며 소상공인들을 끊임없이 회유했다는 것이다. 결국 내부 분열을 효과적으로 이용한 기득권 세력의 획책으로 모든 개혁은 물거품으로 돌아갔고 개혁 세력 중 160여 명이 처형되었다.

 

2016년 대한민국의 촛불 세력도 페미니즘 논쟁으로 인한 20대 남성들의 이탈을 시발로, 조국 사태로 드러난 젊은이들의 상대적인 박탈감을 민주당 정권이 안이하게 대처했고, LH공사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까지 터지면서 2030대와 4050대, 남성과 여성으로 사분오열이 되었다.

 

한국의 정치 보수에게는 촛불 세력의 이러한 내분열이 기회 요인으로 작용했다. 또 다른 기득권 세력인 검찰 및 언론과 이심전심으로 활용해 4년 만에 보궐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미얀마 민주 항쟁의 가장 중요한 열쇠는 쿠데타 군부와 맞서 싸우는 시민 세력 중에 걸출한 지도력을 갖춘 지도자의 존재 유무다. 뛰어난 지도자가 있어야 필요 이상의 피를 흘리지 않고 민주 항쟁에서 승리할 수 있고, 이후 민주화 세력 내부의 갈등을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지나해 해상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에 대응하기 위해 미얀마를 통한 중동과 아프리카의 원자재 수입 통로가 절실한 중국이 미얀마 쿠데타 군부를 대놓고 지지하는 지금, 미얀마 민주화 시위는 미얀마 내부만의 정치 투쟁이 아닌 국제적인 대결 구도로 이어지고 있다.

 

부디 미얀마 국민의 단결과 뛰어난 지도자가 등장해 민주화 투쟁의 승리는 물론 이후의 다양한 국내외적인 역학 구도에서 현명한 대처를 해나갈 수 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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