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일본답사기② '도쿄역 황거외원(皇居外苑) 주위와 독립투사 김지섭 의사'

3.1독립운동 103주년, 순국선열들의 발자취를 찾아 떠나다

글: 고명주 순국선열추모 글로벌네트워크 대표 | 기사입력 2022/12/04 [19:10]

[기획]일본답사기② '도쿄역 황거외원(皇居外苑) 주위와 독립투사 김지섭 의사'

3.1독립운동 103주년, 순국선열들의 발자취를 찾아 떠나다

글: 고명주 순국선열추모 글로벌네트워크 대표 | 입력 : 2022/12/04 [19:10]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3.1독립운동 103주년이 되는 올해 11월 8일부터 17일까지 10일 동안 일본에 있는 순국선열추모회원들과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을 만나고 순국선열들의 발자취를 찾아 여행을 다녀온 이가 있다. 그는 바로 순국선열추모 글로벌네트워크 고명주 대표. 고 대표는 나라사랑과 독립, 민족혼을 세계만방에 드높인 애국지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일본과의 상생관계를 복원하고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치유와 화해를 위해 국내외에 추모전을 매년 정기적으로 진행해왔는데 이번에 일본을 다녀와 글을 답사기를 남겼다. <뉴스다임>은 역사의 현장에서 순국선열들의 숨결을 담은 그의 일본 답사기를 연재한다. 이번에는 밤이 깊어진 도쿄역과 도쿄역 주위, 국립공원 황거외원(皇居外苑)을 둘러보았다. 이 역사의 현장은 깊은 적막과 건강을 챙기기 위해 달리기를 하러 나온 도쿄시민, 그리고 간간히 자동차의 불빛이 지나가고 있었다.

 

 

▲  도쿄역 밤의 풍경.    사진제공: 고명주   

 

먼저, 김지섭 의사의 이중교 투탄 현장으로 가는 표지판이 불빛에 비치고 있었다. 김지섭(金祉燮, 1884. 7. 21~1928. 2. 20) 의사는 1884년 7월 21일 경북 안동군 풍북면(豊北面) 오미동(五美洞)에서 풍산(豊山) 김씨(金氏)인 부친 김병규(金秉奎)와 모친 신천 강씨(信川康氏) 사이에 2남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이중교에서 불행하게 투탄 실패와 일제의 처사에 대한 항거, 굶어 죽을 자유조차 갖지 못한 김지섭 의사. 1927년 20년 징역으로 감형되어 북해도 망고(網尻) 형무소로 이감설이 떠도는 가운데 1928년 2월 20일 옥사 순국하니 향년 44세였다.

 

▲ 황거외원의 표지판 역사가 깊게 숨쉬는 이중교와 사꾸라다문을 표시함.    사진제공: 고명주   

 

또한 황거(皇居)에서 멀지 않은 사쿠라다문(櫻田門)에서 1932년 1월 8일 도쿄 요요기 연병장에서 거행되는 신년 관병식(觀兵式)을 마치고 돌아가던 히로히토를 겨냥해 수류탄을 던졌지만 실패하고 체포되었다.

 

그해 10월 10일 이치가야(日谷) 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또 황거가 위치한 천세대의 밭이 일컬어지는 치요다구(天代田區)는 우리나라로 비교하자면 4대문이 위치한 종로구 쯤 해당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곳에는 우리가 일본역사에서 언급되는 건물들이 밀집해 있었다. 오랜만에 옷에 젖어도 좋은 가을비가 내리는 중에 요요기역에서 잠시 내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는 적성(赤誠, 참된 정성)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적국의 괴수(傀首, 우두머리)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

 

이는 이봉창 의사(1901.8.10- 1932.10.10)가 의거를 하러 떠나기 전 한 맹세다.

 

의거 전 태극기 앞에서 선서하는 이봉창 의사(왼쪽), 이봉창 의사 의거를 '대역사건'이라고 보도한 기사(자료제공: 이윤옥 소장)

 

1931년 상하이를 건너가 한인애국단에 가입한 후 이봉창 의사가 이날 거사는 뜻을 이루지 못했으나 의사의 장거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렇게 조국의 독립을 위해 바친 이봉창 의사의 주검은 1946년 서울 효창공원으로 돌아와 윤봉길, 백정기와 함께 안장되어 있다.

 

우리 모두 시간될 때 효창공원을 들려 애국지사의 영혼을 위로하고 그가 걸었던 길을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 가져보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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