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 도쿄로 가다④과거와 현재, 조화롭게 공존...재부흥 상징하는 개항도시 '요코하마'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3.1독립운동 104주년이 되는 올해 7일 동안 일본 도쿄로 순국선열들의 발자취를 찾아 여행을 다녀온 이가 있다. 그는 바로 순국선열추모 글로벌네트워크 고명주 대표. 고 대표는 나라사랑과 독립, 민족혼을 세계만방에 드높인 애국지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일본과의 상생관계를 복원하고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치유와 화해를 위해 국내외에 추모전을 매년 정기적으로 진행해왔는데 이번에 일본 도쿄를 다녀와 답사기를 남겼다. <뉴스다임>은 역사의 현장에서 순국선열들의 숨결을 담은 그의 일본 답사기를 올해에도 연재한다. 이번에는 재부흥을 상징하는 개항도시 '요코하마'를 둘러보았다.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는 일본 가수 이시다 아유미의 곡이다. 한국에서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기 전에도 한국에서 즐겨 듣던 몇 안 되는 일본 가요이며, 한국인이 가장 잘 아는 일본 노래로 알려져 있으며 요코하마를 대표하는 명곡이다. 이렇듯 우리에게 잘 알려진 요코하마, 인구 600명의 작은 마을이었던 이곳이 국내외에서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1859년의 개항이었다.
요코하마는 도쿄의 신주쿠까지 기차로 불과 30분 남짓의 가까운 거리에 있는 우리의 인천과 같은 개항장이며 항구도시다. 대한민국 인천 개항의 역사와 비교해 보면 요코하마와 너무 많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요코하마시(横浜市, City of Yokohama)는 일본 가나가와현 동부에 있는 현청 소재지다. 2002년 6월 30일 2002년 FIFA 한일월드컵 결승전, 독일과 브라질간의 경기가 있었던 도시이니 이 또한 인연이라 할 수 있다.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세계 최대 규모의 차이나타운이라고 불리우는 요코하마 중화가다. 인천의 차이나 타운은 언덕을 이용해 만들어졌지만 이곳은 평지에 만들어 졌고 일본의 풍경과 어우러진 풍경같았다.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의 간략한 역사를 알아보면, 1859년 개항하면서 요코하마에 들어오는 유럽상인들이 한자를 아는 중국인 통역관들을 대거 스카우트하면서 요코하마에 중국인 거주 지역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후 많은 중국 상인들이 일본에 오면서 학교를 세웠고 중국인 공동체를 형성해 여러 기능을 갖춘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차이나타운 요코하마 중화가는 다양한 중국식 음식으로 넘쳐난다.
요코하마가 더 위대한 것은 두 차례의 폐허를 딛고 일어나 내항(內港)을 시민들이 접근할 수 있는 공원으로 조성했고, 개항 초기의 건물들을 보존하고 복원했다는 점은 우리 한국이나 인천에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요코하마 개항기념 자료관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과거 영국 영사관 건물이었던 곳을 영사관이 철수하면서 시 당국이 자료관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개항 초기부터 현재까지 각종 자료들이 집대성되어 있다.
요코하마에서 도시재생 명소로 첫손을 꼽는 곳이 바로 세관창고로 쓰던 아카렌가 창고다. 메이지 말기부터 다이쇼 초기에 지어진 창고군으로 요코하마 항구의 상징적인 건물이다.
주변 일대의 광장 공터와 공원으로 이루어진 아카렌가 창고는 해안가 넓은 광장에 예전에 보세창고로 쓰였던 건물로 지금은 외형은 보존한 채 내부를 개조해 쇼핑 및 식당가, 그리고 대형 문화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는 요코하마의 핫플레이스이다.
1902년 지어진 정부 보세창고인 아카렌가 창고는 1989년 문을 닫은 뒤 9년 여의 대대적인 보존·복원공사를 거쳐 2002년 공연 전시시설과 쇼핑센터 등으로 개조됐다고 한다.
각종 기념품점과 음식점들이 들어차 있었고, 관람객들은 한 세기 전 요코하마 항구의 정취를 맛보면서 쇼핑과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아름다운 봄꽃, 붉은 벽돌 건물과 어울린 아름다운 장소에 휴가를 나온 가족, 관광객의 얼굴이 마냥 행복해 보였다.
요코하마에서 도시재생의 모범사례로 떠올리게 되는 것은 ‘미나토미라이21(みなとみらい21)’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한다. ‘미나토’는 항구를, ‘미라이’는 미래를 뜻한다. 그러므로 ‘미나토미라이21’이란 ‘21세기 항구의 미래’를 말한다.
일본의 고도성장기 번영을 구가하던 시절인 1965년에 처음 구상되었고 거품경제의 정점에서 대규모 워터프런트 개발을 통해 중공업 도시의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게 애초 이 사업의 목적이었다. 이렇게 시작돼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진행 중인 미나토미라이21 사업은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손꼽는 도시재생 모델로 꼽힌다고 한다.
요코하마 항구 박물관에서 아카렌가 창고가 있는 길이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고 바다 바람이 불어 마음도 상쾌했다. 바다를 끼고 걷는 산책로도 도시재생의 설계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본래 열차가 다니던 길이었는데, 철로를 걷어내고 난 뒤에 바다 경관을 즐기며 걷기 좋은 산책로로 만들어 냈다.
일본 요코하마. 도시 재생 모범도시,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 과거와 현재 상생의 공존이라는 수식어가 부족한 요코하마는 ‘항구의 미래’를 알려주는 곳이었다. 대한민국의 미래로 도약하는 인천에게 있어 시시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되었다.
개항 연도는 인천이 1883년이니 요코하마가 1859년으로 24년 앞서지만, 수도인 도쿄와 서울의 배후도시이고, 외국의 요구에 강제적으로 개항되었다는 점과 근대화 문물을 처음 받아들였던 항구라는 점뿐이 아니라 개항 당시 작은 어촌이었던 인천과 요코하마도 역사의 풍파를 이겨내고 나라의 미래로 우뚝 서고 있는 점 또한 같다고 할 것이다.
요코하마는 1923년 간토 대지진과 2차 세계대전 말기 미군의 공습으로 폐허에서 일어났고 인천 또한 6.25 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과 시가지 전투를 통해 크게 파괴된 후 재건을 통해 발전되었고 인근에 차이나 차운 형성 등 다양한 면에서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이야 과거 건축물을 현대적으로 활용하는 레트로 방식의 도시재생 사업이 흔하지만, 당시만 해도 세관창고를 전시장으로 탈바꿈한다는 것은 기발한 발생이라 생각되었다.
현재 인천이 뉴홍콩시티의 건설과 세계 10대도시를 표방하면서 내항을 개발함에 있어 요코하마의 성공을 필히 벤치마킹하고 더 나은 창의적 아이디어를 더해 세계적인 도시로 나가는 핵심기반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2023년 재외동포청을 유치한 인천이 힘을 다시 모아 동북아(東北亞)의 허브로 세계적으로 비상하는 미래도시가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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