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한·중·일 3국, 바둑 강자들의 승부세계를 진단하다<2> '최정' 편'바둑 여제' 전 세계 여류 바둑계서 독주...치열한 육탄전 벌이는 전투 바둑으로 인기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바둑 강자들의 세대 교체가 이루어졌다. 성공적인 세대 교체 이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3국의 바둑 강자들은 누구일까? 그들이 강자로 부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바둑 강자들의 치열한 승부세계를 살펴본다.<편집자주> 한국 바둑계의 희망 2010년대 중반 암울한 한국 바둑계는 세 가닥 희망의 빛이 있었는데 여류 바둑계의 선전, 최정의 바둑 여제 등극, 신공지능 신진서의 출현이었다.
세계 최강 남자 바둑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던 여류 바둑계는 2000년대부터 생긴 여자 바둑 국가 대항전에서 일본을 압도한 것은 물론이고 중국의 기세에 전혀 밀리지 않고 팽팽한 접전을 벌이며 바둑팬들의 헛헛한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그 와중에 세계 여류 바둑 최강자인 최정의 출현은 한국 바둑의 한 줄기 빛이 되었다. 최정의 위상을 논하려면 1990년대부터 20여 년간 세계 여자 바둑계의 절대 강자, 철녀, 반상의 마녀란 별칭을 지닌 루이나이웨이를 먼저 설명해야 한다.
루이나이웨이는 1990년대 초부터 20년간 세계 정상급 남성 기사와 대등하게 겨룰 수 있는 유일한 여류 기사였고 1999년부터 13년간 한국 기원의 초청으로 한국에서 객원 기사 생활을 했다.
1963년생인 루이나이웨이는 1985년 중국 기원에 입단했다. 그녀는 1980년대 중일 슈퍼대항전에서 3회에 걸쳐 9연승을 하며 일본을 침몰시킨 네웨이핑(섭위평)을 공개적으로 망신 주었다. 게다가 중국 기원 내의 남녀 차별 문제에 대한 입장 개진과 연인 장주주 9단이 1989년 천안문 항쟁에 참여한 이유로 체포령이 떨어져 중국을 탈출해 홍콩, 대만,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 생활을 했다.
미국 생활 중 1993년 제2회 응씨배에 참가한 루이나이웨이는 이창호를 꺾고 4강까지 올라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이후 메이저 세계 대회에서 여류 기사로서 4강 이상 진출한 기사는 2022년 삼성화재배 결승까지 진출한 최정이 유일하다.
한국 여류 기사들의 기력 향상을 위해 한국 기원은 루이나이웨이에게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냈고 그녀는 1999년부터 미국에서 결혼한 남편인 장주주와 함께 13년간 한국에서 객원 기사로 활동했다.
2000년 국내 기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국수전에서 예선전에서 유창혁을, 도전자 결정전에서 이창호를, 결승전에서 조훈현 국수를 격파하고 국수위를 차지해 한국 바둑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여자만 출전할 수 있는 제한 기전이 아닌 종합 기전에서 여류 기사가 우승한 경우는 루이가 최초였고 이 기록은 한때 최정의 적수였던 중국의 위즈잉에게서 15년이 지난 후에야 깨졌다. 그나마 위즈잉은 신인 기전에서 우승을 한 것이였다.
루이나이웨이는 이창호에게 유난히 강했는데 루이나이웨이와 이창호가 전성기였을 때 상대전적이 5승 2패였을 정도였다. 루이나이웨이는 이창호보다 12살이 더 많다. 그녀는 인성도 매우 좋아 한국 기사들 사이에서 인기도 높았다.
국내 기사도 아닌 중국 객원 기사를 길게 설명한 이유는 철녀 루이의 위상에 도전할 수 있는 기사는 세계 여류 기사를 통틀어 바둑여제 최정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2014년 14세 나이로 입단한 바둑여제(女帝) '최정' 최정은 1996년생으로 유창혁 문하에서 바둑을 배웠고 2010년 14세의 나이로 입단을 했다. 이듬해인 2011년 제한 기전이기는 하나 지지옥션배 본선에서 8연승을 하며 돌풍을 일으켰고 여류기성전에서는 루이나이웨이에게 졌지만 준우승을 하면서 될 성 싶은 나무임을 일찌감치 보여주었다.
2012년 16세에 국내 기전인 여류명인전에서 첫 우승을 하고 2014년에는 여류 개인 국제 기전인 궁륭산병성배에서 첫 여류 국제 기선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궁륭산병성배는 2010년 중국에서 창설된 최초의 여류 개인 국제 기전이며 2019년 10회를 끝으로 폐지되었다. 이 기전은 한국 기사들의 강세가 돋보였는데 박지은이 1회 및 2회 대회, 오유진이 7회 그리고 최정이 5, 8, 9, 10회의 4차례 우승을 했다.
2010년대 중반부터 국내 여류 바둑계는 이미 최정의 적수가 없었다. 일본 기전인 센코배 월드 여류 최강전에서는 한때 최정의 라이벌이었고 여류 바둑 랭킹 세계 1위였던 위즈잉이 3년 연속 우승을 했고 이 대회와 인연이 없었던 최정은 2023년 5회 대회에서 첫 우승을 했다.
2018년부터 중국이 개최했던 오청원배 세계 여자 바둑 선수권대회도 한국 기사의 강세가 두드러졌는데 5회의 우승자 중 4번이 한국 기사이고 그중 최정은 두 번 우승을 했다.
2010년대 중반 이미 국내 여류 기전에서 독주를 하기 시작했던 최정은 후반에 이르러서 라이벌인 중국 랭킹 1위 위즈잉을 완벽하게 제압하고 명실상부 세계 바둑 여제로 등극했다.
2023년 한국 기사 종합 랭킹에는 13위까지 올랐고 여류 기사로서는 10년째 부동의 1위이며 국제 여류 기전은 7번의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다. 최정의 위상은 여류 바둑계에서의 독주가 아니라 메이저 국제 기전에서 철녀 루이나이웨이를 능가하는 기록에서 그 대단함을 알 수 있다.
2022년 메이저 국제 기전 준우승.....루이나이웨이 뛰어넘는 바둑 여제 되길 최정은 2016년 메이저 국제 기전인 LG배 통합예선에서 최초이자 유일하게 통과한 여류 기사다. 덧붙여 설명하자면 메이저 국제 기전에 참가한 여류 기사들은 대부분 남녀 통합예선에 참가하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 LG배를 포함해서 여지껏 통합예선을 거친 여류 기사는 극소수며 LG배는 최정이 최초다.
일반적으로는 대회의 흥행과 광고를 위해 지명도가 높은 여류 기사는 본선에 초청장을 받아 참가하거나 여류 기사만을 위한 시드 한~두 장 정도 배정을 받아 여류 기사만 따로 예선을 치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2018년 최정은 메이저 국제 기전인 삼성화재배 본선 32강 리그전에서 LG배 우승 경력이 있는 스웨와 중국 랭킹 21위인 타오신란을 꺾고 여성 최초로 본선 16강에 진출했다. 2019년에는 삼성화재배 우승자 구쯔하오를 LG배 통합 예선 준결승전에서 완파하고 또다시 LG배 본선에 진출, 32강전에서 스웨를 다시 만나 완승을 거두며 16강전에 진출했다.
2022년 제27회 삼성화재배 월드 바둑 마스터스에서 여자부 예선을 통과한 최정은 32강전에서 일본의 사다 아쓰시를 꺾었고 16강전에서 일본 랭킹 1위 이치리키 료에 대역전승을 거두었다. 8강전에서 중국 랭킹 3위이며 LG배 우승자였던 양딩신을 격파해 4강에 올라 제2회 응씨배의 루이나이웨이 이후 30년 만에 역대 두 번째로 메이저 국제 기전 4강에 오르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이미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최정은 준결승전에서 상대 전적 5전 5패이고 한국 랭킹 3위이자 메이저 국제 기전인 춘란배 우승자 변상일마저 격침시키며 결승에 진출해 여자 프로기사 사상 첫 메이저 국제 기전 결승전 진출이라는 쾌거를 달성하며 여류 바둑계의 역사를 새로 썼다.
비록 결승전에서 새로운 세계 최강, 신공지능 신진서를 만나 0:2로 석패를 했으나 최정은 세계 바둑계를 깜짝 놀라게 하며 우승자 신진서보다 훨씬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변도 연출했다. 2023년에는 세계 여류 바둑 기사로서는 루이나이웨이에 이어 두 번째이자 한국 여류 기사로서는 첫 번째로 국내 종합 기전인 제28기 GS칼텍스배 프로기전에서 결승 진출을 했으나 변상일에 막혀 준우승에 멈추어야 했다.
최정의 바둑은 '사활 귀신'이라는 별명답게 모든 상황에서 치열한 육탄전을 벌이는 전투 바둑이라는 점에서 그의 스승 유창혁처럼 인기가 높다.
2022년 메이저 국제 기전 준우승이라는 값진 경험으로 보다 차분하게 바둑을 이끌어가고 있고 약점으로 지적받는 포석과 끝내기도 한층 성장했다.
2023년 현재 27세인 최정은 아직 에이징 커브에 들지 않는 전성기이며 전 세계 여류 바둑계에서는 독주를 하고 있는 최정이 자신의 롤모델인 '반상의 마녀' 루이나이웨이를 뛰어넘는 바둑 여제가 될 수 있으리라 즐거운 기대를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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