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들 수 있다는 것', 희망적이지 않은가

뇌는 자극에 반응 반복할 뿐…결국 '자유의지'다

윤다빛 기자 | 기사입력 2014/03/03 [10:18]

'나를 만들 수 있다는 것', 희망적이지 않은가

뇌는 자극에 반응 반복할 뿐…결국 '자유의지'다

윤다빛 기자 | 입력 : 2014/03/03 [10:18]
로봇과 좀비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로봇은 프로그램되어 있는 대로 움직인다면 좀비는 본능에 의해서 움직인다고 할까? 본능도 하나의 프로그램이니, 결국 둘은 같은 분류에 넣어야 하겠다.

1960년대에 리벳 박사는 뇌의 전기 신호를 측정해 자신의 의지에 앞서 뇌가 먼저 반응한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밝혔다. 그 이후로 많은 뇌 과학자들에 의해서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이미 뇌의 특정 부위가 활성화됨을 확인했다. 심지어 더욱 정교해진 실험들을 통해서 80%까지 실험자의 생각을 미리 예측하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간질 환자들에게도 실험이 진행되었는데,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부분을 잘라내어 간질 발작을 막았더니 언어 처리 능력이 없는 우뇌로 받아들인 정보는 언어 처리 영역이 존재하는 좌뇌에서 임의대로 적당한 사연을 만들어내는 이상한 현상이 발견되었다.

결국 이러한 뇌 과학 실험의 결론은 우리에게 과연 의식이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가진 의식, 곧 자유의지는 이미 뇌에서 내린 결정을 좌뇌 맘대로 합리화하는 자유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것도 자유라면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뇌에서 시킨 것을 마치 자신의 의지로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로봇은 프로그램 업데이트라도 가능한데 인간은 어떨까? 인간은 보는 대로 듣는 대로 자극이 주어짐에 따라 뇌에서 신경회로들이 결합을 강화한다. 쉽게 말하면 모방을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영화 속의 배우가 담배를 멋있게 손가락 사이에 끼우면 청소년들의 흡연율이 39배로 오른다고 했던가.

‘베르테르 효과’라는 말도 생겼다. 유부녀를 사랑한 로맨티스트 ‘베르테르’는 사랑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권총으로 자살한다. 이러한 내용으로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출간되었을 때 그 책을 읽은 수많은 청년들의 자살로 이어지자 당시 출판 금지까지 당했다. 요즘은 연애인들이 자살하면 그와 똑같은 방법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물론 뇌 과학자들이 모두 다 자유의지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책임과 자유가 생겨난다고 생각하는 부류도 있다.

어떤 과학자들은 결정론적인 고전 뉴턴 역학과 비결정론적인 양자역학으로 비교하며 접근한다. 뉴턴 역학에서는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하고, 물리 공식에 넣으면 정확하게 물체의 위치, 속도, 운동량, 에너지 등을 계산해 낼 수 있지만 아주 작은 세계인 원자의 세계로 들어가면 뉴턴 역학과 아주 다른 얘기를 하는 양자역학에서는 ‘결정된 것이 없다’라고 말한다.

즉, 뇌 속의 신경회로들의 결합으로만 의지가 만들어진다면 결정론적으로 뉴턴 역학 차원에서 이해할 수밖에 없지만 뉴런 사이의 아주 좁은 공간에서 이뤄지는 물질 교환의 차원에서는 양자역학이 적용되어 예측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단지 예측 불가능의 상황에서 나아가 자유의지에 대한 강한 열망을 드러낸다. 그렇다. 창조주는 인간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 인간은 창조주를 닮게 창조했다고 말씀한다. 창조주가 로봇이 아니듯, 인간도 로봇은 아니다. 왜 창조주는 인간을 비슷하게 창조했는가? 사랑의 상대체로 삼으시기 위함이었다.
 
간단한 실험을 해보자. 제일 보기 싫은 책을 꺼내보자. 쳐다보는 순간 내 머릿속의 뇌에서는 어떤 일이 생길까? 보는 대로 뇌에 자극이 입력된다. 곧바로 뇌는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출한다. 그럼 실제로 하기 싫은 마음이 생겨난다. 여기까지 보면 뇌에 의해서 마음이 생겨났으니 뇌가 다 조절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순간 빛의 속도로 다시 입력을 집어넣자.

“아냐, 저거 그렇게 힘들지 않을 거야. 잘할 수 있어!” 그러면 뇌는 새로운 자극을 입력받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호르몬을 분출한다. 티로트로핀이라는 호르몬이다. 곧 할 수 있다는 의지가 생겨난다. 뇌는 육체의 일부로서 자극에 가해지면 반응이라는 단순한 동작을 반복할 뿐이다. 어렵지 않다. 이것이 실험 끝이다. 

이와 같이 스트레스 호르몬이 나올 때 쯤 곧바로 새로운 입력을 의식적으로 넣어주면 뇌는 새로운 자극에 의한 신경회로의 결합을 강화해 나간다. 결국 일정기간 후에는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어도 긍정적인 마음이 생겨나게 된다.

이것이 뇌를 속이는 것이고, 훈련시키는 방법이다. 의지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내 뇌를 속여서 얼마든지 나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나쁜 자극이 들어오려고 하면 단번에 잘라내는 것도 의지대로 할 수 있다. 순간 눈만 감으면 끝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버려 버린 뇌라면 어떻게 할까?

아까 한 실험처럼 일정 기간 동안 뇌를 속여가면서 훈련을 시켜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절대 좋지 않은 반응을 만들어내는 것들을 뇌 속에 입력시키지 않아야 한다.
 
거기에 더 나아가서 창조주가 전하는 메시지들을 뇌 속에 꾸준히 입력시킨다면 뇌 속에 저장된 부정적인 이미지인 트라우마에 반대되는 언어가 각인되는 것이어서 상쇄되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

사랑이 답이다. 연애인을 사랑한다면 내게 주어지는 건 창조주가 멋있게 창조한 그들의 사진과 친필 서명뿐이다. 연애인들도 결혼하고, 나이를 먹는다. 하지만 창조주를 사랑한다면 나의 뇌가 변화되어 모방 자살도, 베르테르 효과도 안녕이다.

로봇이고, 좀비고 다 나랑 상관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새삼스럽게 되찾은 것 같은 자유의지. 원래 있었던 것이지만 내가 나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은 희망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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