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현대판이 '촛불집회' 아닐까

김민의 '예술 읽어주기'<3>

김민(예술평론가) | 기사입력 2016/12/26 [15:36]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현대판이 '촛불집회' 아닐까

김민의 '예술 읽어주기'<3>

김민(예술평론가) | 입력 : 2016/12/26 [15:36]
▲ 외젠 들라크르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     © 뉴스다임

 

광화문 촛불집회에 가기로 마음을 먹으면서 생각했던 그림이 있다. 그것은 프랑스 화가인 '외젠 들라크루아(Eugunu Delacroix)'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었다. 미디어로 본 촛불집회는 그러한 것이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들라크루아의 작품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아마 한번쯤은 누구나 이 그림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림의 중앙에 있는 프랑스 삼색기를 들고 앞으로 달려 나오는 여인은 실재의 인물이 아닌 자유를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이다.

 

이 그림은 혁명을 기리고 있지만 전통적인 구도와 도상을 사용하고 있다. 화면 오른쪽 포화 연기 사이로 보이는 건물은 노트르담 성당이며 혁명 당시의 노트르담 성당 탑에 아침부터 삼색기가 꽂혔다.

 

여인은 프랑스 대혁명 당원이 쓰던 붉은 모자 프리지아를 쓰고 오른손에 삼색기를 들고 있다. 삼색기는 1789년 루이 16세가 봉기군의 적청색 모표를 자신의 흰색 문장과 결합해 탄생한 것이다. 자유, 평등, 박애 그리고 총을 든 어린 소년은 프랑스 미래를 상징한다.
 
17일 토요일의 광화문광장과 그 인근은 원래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인파로 가득차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명확하게 구분돼 있었다. 경찰들과 오전에 박사모 그리고 오후에 촛불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이었다.

 

5시쯤이 되자 많은 사람들이 광화문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나처럼 길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충분히 혼자서 찾아갈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은 한 방향을 향해가고 있었으며,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찾아갈 수 있었다. 

 

필자는 그 현장에 있으면서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현대로 변화된 것이 촛불집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들라크루아의 그림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공화국 광장이라는 점과 현재 모든 정치적인 상황을 전 세계로 파급력 있게 전하는 수단인 SNS에서 사용하는 ‘이미지’라는 것이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의 회화적 이미지가 정치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촛불집회에는 회화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거대한 감정의 응어리들이 있었다. 수많은 군중들은 한 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집중하고 있었고 질서 정연하게 서로를 배려하고 있었다.

 

이것은 우리가 원하는 ‘이상’에 대한 강한 열망, 하지만 그 열망의 밑바닥에는 지극히 괴로운 슬픔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토록 많은 사람이 한 장소에 있으면서 이토록 고요할 수 있었던 것인가. 사람들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촛불을 손에 쥐고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이 작품의 부제는 ‘1830년 7월 28’이며 왕정복고에 반대해 봉기한 시민들이 3일간의 시가전 끝에 결국 부르봉왕가를 무너뜨리고 루이필리프를 국왕으로 맞이한 7월 혁명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들라크루아는 1830년 10월18일, 형 샤를 앙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현대적인 주제, 즉 바리케이트 전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조국의 승리를 위해 직접 나서지 못했지만 그래도 조국을 위해 이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한 나라에 함께 살고 있지만 같은 생각을 하며 살아가진 않는다는 것이 촛불집회에서 강렬히 느껴졌다. 우리들의 이러한 울림이 높은 곳에 있는 그들에겐 들리지 않는 것일까? 그들은 촛불이 무섭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생각에서 우리를 배척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강렬한 울림을 외면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누가 있을까. 역사가 말을 해 줄 것이며, 우리는 각자의 촛불을 들었고 그것은 현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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