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임기획]'박장백'의 남미 표류기<8>

"비니쿤카에 비하면 마추픽추는 껌!"

박장백 대학생기자 | 기사입력 2017/07/24 [16:50]

[다임기획]'박장백'의 남미 표류기<8>

"비니쿤카에 비하면 마추픽추는 껌!"

박장백 대학생기자 | 입력 : 2017/07/24 [16:50]

어쩌다보니 대학교 3학년이 끝났다. 이대로라면 남들 사는 순서대로 살게 될 것 같았다. 휴학을 했다. 조선소에 들어갔다. 조장까지 달았다. 역시 난 뭘해도 잘한다는 성취감을 얻고 성격을 버렸다.

여행자금은 생겼는데 항공권을 못 구했다. 술값과 닭발값으로 재산을 탕진하던 중 여행자들에게 '리마대란'으로 불리는 아에로멕시코 특가 프로모션이 떴다. 홀린 듯이 결제 버튼을 눌렀다. '박장백'의 남미표류기는 이렇게 시작됐다.<편집자주>

 

비니쿤카는 원래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색깔도 어딘지 '인위적'으로 보였고, 그렇게 멋진지 모르겠어서 굳이 여행계획에 넣지 않았다. 그런데 쿠스코에 좀 더 있게 되면서 뜻하지 않게 가게 됐다.

▲ 비니쿤카 가는 길     © 뉴스다임


새벽부터 차를 타고 비몽사몽간에 아침을 먹고 설명을 들었다. 가이드 분께서 "비니쿤카에 비하면 마추픽추는 껌"이라고 했다. 알고 보니 비니쿤카는 5100m가 넘는 고산이었다. 별 생각없이 사진만 보고 온 나는 어렴풋이 '나는 이제 죽었다'는 생각을 하며 트래킹을 시작했다.

초반에는 만만했다. 평지였고 산책하는 기분이었다. 근데 어라? 숨이 차기 시작한다. 그냥 걷고 있는데 전속력으로 뛰는 것 마냥 숨이 가쁘다. 욕을 하기 시작했다. 전 날 처음 본 동행 분이 당황했다. 내 알 바 아니었다. 눈에 뵈는 게 없었다. 

▲ 알파카는 얄미울만큼 평온해보였다.     © 뉴스다임


스웨터에 판초까지 입고 왔던 나는 어느새 반팔 차림이었다. 돌에 걸터앉아 애꿎은 바닥에 또 욕을 하고 있는데 말 탄 사람들이 패딩을 껴입고 "아이 추워 그래도 풍경은 멋지다. 꺄르륵^^~" 하며 지나갔다. 오기가 생겼다. 말의 힘을 빌리지 않고 내 두발로 정상에 오르리라! 마음이 약해질까봐 다짐하는 영상까지 찍었다. 다짐한 후 열 걸음도 못 가 주저앉았다.

표정만큼은 거의 엄홍길이었다. 

▲ 그래도 그 다짐이 효과가 있었다.     © 뉴스다임


처음엔 저 언덕까지 넘고 쉬자고 했던게 열 걸음만 걷고 쉬자, 여덟 걸음, 다섯 걸음, 세 걸음까지 줄었을 때 쯤 정상에 도착했다.
성취감에 머리털이 곤두설 정도였다. 도착 영상을 찍고 크게 숨을 한 번 쉬었더니 엄청나게 추워졌다. 다시 스웨터에 판초를 둘러 입었다. 그런데 사진에 나오는 풍경을 찍으려면 언덕을 하나 더 올라야 했다. "거짓말이라고 해줘 제발"

▲ 날씨가 좋아 더 예뻤던 비니쿤카     © 뉴스다임


그 언덕에서의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 '죽음'인 듯했다.

이는 분명 십자가를 진 예수의 그것이었다. 나를 위한 골고다 언덕이었다.
절로 고해성사가 나오고... 살면서 저지른 내 과오에 대해 사죄했다.

그리고 쓰러지듯 언덕에 몸을 기댔을 때 눈 앞에 펼쳐진 모습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 하나도 안 추운 척하는 사진     © 뉴스다임


불과 1년 전, 간빙기에 처음 발견된 비니쿤카는 페루 전통어인 케추아어로 일곱빛깔 산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레인보우 마운틴', '무지개 산'이라고도 불린다.

퇴적작용이 만들어 낸 붉은색, 노란색, 연두색..., 그 거대한 색색의 띠는 나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 마추픽추 투어를 같이했던 친구들을 여기서 또 만났다.     © 뉴스다임


고산이라 부는 칼바람! 그마저 로맨틱하게 느껴졌다.

사진에 담긴 따사로운 햇살 아래 알록달록한 비니쿤카도 예쁘지만 내 눈에 담긴 온 몸이 덜덜 떨리는 추위 속 혼자 고고하게 반짝이는 비니쿤카는 더 찬란했다.

하지만 거기에 더 있으면 나약한 인간의 몸은 박살이 날 것이 분명했기에 서둘러 내려왔다. 한 발씩 내려갈 때마다 기온이 달라지는게 느껴졌다. 다행히 몸살이 나기 직전에는 내려왔으나 콧물을 하도 줄줄 흘려서 코와 인중이 다 헐었다. 그럼 어떠랴. 멋진 풍경에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타박타박 내려온 그 시간은 아마 절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 그래도 내려와서 먹은 컵라면이 아니었다면 분명 감기에 걸렸을 거다.     © 뉴스다임


비니쿤카 동영상을 전해 드리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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