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차를 타고 비몽사몽간에 아침을 먹고 설명을 들었다. 가이드 분께서 "비니쿤카에 비하면 마추픽추는 껌"이라고 했다. 알고 보니 비니쿤카는 5100m가 넘는 고산이었다. 별 생각없이 사진만 보고 온 나는 어렴풋이 '나는 이제 죽었다'는 생각을 하며 트래킹을 시작했다.
초반에는 만만했다. 평지였고 산책하는 기분이었다. 근데 어라? 숨이 차기 시작한다. 그냥 걷고 있는데 전속력으로 뛰는 것 마냥 숨이 가쁘다. 욕을 하기 시작했다. 전 날 처음 본 동행 분이 당황했다. 내 알 바 아니었다.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스웨터에 판초까지 입고 왔던 나는 어느새 반팔 차림이었다. 돌에 걸터앉아 애꿎은 바닥에 또 욕을 하고 있는데 말 탄 사람들이 패딩을 껴입고 "아이 추워 그래도 풍경은 멋지다. 꺄르륵^^~" 하며 지나갔다. 오기가 생겼다. 말의 힘을 빌리지 않고 내 두발로 정상에 오르리라! 마음이 약해질까봐 다짐하는 영상까지 찍었다. 다짐한 후 열 걸음도 못 가 주저앉았다.
처음엔 저 언덕까지 넘고 쉬자고 했던게 열 걸음만 걷고 쉬자, 여덟 걸음, 다섯 걸음, 세 걸음까지 줄었을 때 쯤 정상에 도착했다. 성취감에 머리털이 곤두설 정도였다. 도착 영상을 찍고 크게 숨을 한 번 쉬었더니 엄청나게 추워졌다. 다시 스웨터에 판초를 둘러 입었다. 그런데 사진에 나오는 풍경을 찍으려면 언덕을 하나 더 올라야 했다. "거짓말이라고 해줘 제발"
사진에 담긴 따사로운 햇살 아래 알록달록한 비니쿤카도 예쁘지만 내 눈에 담긴 온 몸이 덜덜 떨리는 추위 속 혼자 고고하게 반짝이는 비니쿤카는 더 찬란했다.
하지만 거기에 더 있으면 나약한 인간의 몸은 박살이 날 것이 분명했기에 서둘러 내려왔다. 한 발씩 내려갈 때마다 기온이 달라지는게 느껴졌다. 다행히 몸살이 나기 직전에는 내려왔으나 콧물을 하도 줄줄 흘려서 코와 인중이 다 헐었다. 그럼 어떠랴. 멋진 풍경에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타박타박 내려온 그 시간은 아마 절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