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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에 숨겨진 '인간의 심리'
김민의 예술 읽어주기<13>
 
김민(예술평론가) alswn8833@naver.com 기사입력  2017/10/16 [08:35]

지금은 동양과 서양의 가옥구조 차이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디를 가든지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그러고 보면 전 세계 어디든지 맥도날드나 스타벅스는 존재한다- 비슷한 유형으로 사람은 살아간다. 하지만 역사를 조금씩 거슬러 올라가 본다면 큰 차이점을 찾을 수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병풍이다.

 

병풍은 때와 장소에 따라 가리개, 바람막이, 제사 혼례, 장식, 권위, 위엄 등을 나타내게 되는데 이는 병풍이 어떠한 공간에 놓여지느냐에 따라서 내포하는 의미가 달라진다. 우리역사를 돌이켜 보았을 때 조상들은 공간의 나눔에 있어서 서양처럼 단순히 고정돼 있는 벽을 사용하지 않고, 유동적인 병풍을 사용한 것이다.

 

이것으로 유추해 보면 아마도 조상들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것은 자기만의 특정 공간을 가지고 싶어 하며 그 공간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람의 심리를 반영한다.

 

하지만 최초의 병풍은 중화민족의 특유한 공예미술품으로 이미 4천여 년의 전승역사를 갖고 있다. 최초 황제 보좌의 뒷 배경을 위해 출현했으며 나무틀에 실크를 표구해 제왕의 권력을 상징했다.

 

이후 박용숙의 한국미술의 기원에서 병풍을 부의지사라고 쓰고 또 천자는 부의를 짊어져야 일어설 수 있다고 함으로써 병풍이 천하를 도모하는 의례와 관련됨을 암시하고 있다.

 

▲ www.gogung.go.kr,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십장생도 병풍>     ©뉴스다임 김민 기자

 

앞서 나온 '부의지사'는 자루가 없는 도끼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왕과 도끼는 도대체 무슨 관계일까? 왕과 도끼에 대한 관계는 중국의 고대 나라인 주나라 때부터 한국의 조선시대까지 도끼만큼 왕권을 적절하게 상징하는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했다.

 

그것은 도끼가 갖는 이미지 즉 살상기구에서 오는 폭력적 이미지와 생긴 모양에서 오는 상징성 때문이다. 전통시대에 왕은 출정하는 장수에게 도끼를 내려주었는데, 이는 왕의 생사여탈권을 그 장수에게 이양한다는 상징적 행위였다.

 

조선시대의 관료나 유생 중에는 도끼를 짊어지고 대궐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물론 이런 경우도 자신의 주장이 잘못됐다면 왕의 생사여탈권인 도끼로서 자신의 목을 치라는 상징적 행위이기도 하겠다.

 

또한 ()’이라고 하는 글자가 도끼의 모습을 본 딴 상형문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왕권에 관한 것이 아니더라도 병풍은 죽은 자와 산자의 공간을 나누기 위한 수단으로 쓰였다.

 

모두 다 잘 알다시피 병풍은 제사에 쓰이는 것이 가장 보편적이었으며, 제사를 받는 입장을 세속으로부터 은폐하거나 격리시키는 기능을 가지며, 동시에 그것 자체가 일차인 신전의 제 장(祭場)이 됨으로써 성()과 속()의 만남이나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의 주술인 매개물이 된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삶은 병풍에 둘러싸인 삶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병풍은 그 용도와 쓰임이 다양하다. 쓰임에 따라 아무 그림을 가지고 펼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의 내용에 따라 때와 장소에 맞게 쓰이게 된다.

 

왕가에서 쓰이는 병풍은 앞에서 언급됐듯이 부의가 그려진 병풍이나,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그림 등을 사용하며 남녀가 부부의 연을 맺을 때는 모란병풍을 치고 백년해로를 맹세하거나, 신방을 차린 뒤에는 안방의 화조병풍 아래서 모든 일이 이루어졌다.

 

그 밖에도 집안의 경조사나 나라의 특별한 대소사때마다 병풍은 빠짐없이 등장한다. 이러한 병풍의 종류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하지만 대부분이 작가 미상인 경우가 많고, 어느 때에 그려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그림들이 많다.

 

그 이유는 간단히 말하자면 조선시대 그림들은 대부분 서민 출신의 화가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며 궁중화가들이 그린 그림들만 작가를 알 수 있었다. 특히 민간에서 쓰는 병풍 그림들은 장식적 필요에 의해서 그린 민화들이어서 생활에 필요한 물품의 형태로 나타나거나 가옥구조에 첨가되는 장식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거의가 병풍에 편집돼 집안에 장식됐는데 병풍에 그린 그림은 그것을 둘러칠 장소나 행사의 내용에 걸맞는 것이 선택됐다.

 

병풍은 단순하게 그림이 그려져 있는 벽은 아니다. 그저 그림의 역할을 하는 평면이었다면 굳이 공간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병풍은 배경으로 쓰일 때 잘 보이지 않으나 즐거움을 위해서는 뚜렷하게 잘 보인다.

 

그 재료도 무척 다양하며 나중에 다시 꾸밀 수도 있다. 무게도 가벼운 편이며 한국 사람은 쉽게 부서지는 재료를 가지고 소박하고 훌륭한 병풍을 만든다.

 

현대에도 병풍이 쓰이고 있다. 특히 한국 화가들은 현대적 소재와 병풍을 조합해서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오랜 역사 속에서 우리 생활과 함께 한 병풍은 그 본디의 구실과는 다르게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반대의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병풍의 본 구실은 가리고 나누는데 있다. 이름 그대로 바람이나 시선을 막고 공간을 나누는 도구가 바로 병풍인 것이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가림과 나눔이 아닌 드러냄과 어울림의 도구로 우리 생활에 자리 잡게 됐다.

 

서구화로 가옥구조가 변경되고 있지만 병풍은 하나의 인테리어로서의 장식성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 마음 가운데는 오랜 역사 속에 왕과 귀족 그리고 서민들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소망과 꿈을 그려서 바탕이 완성 되고자 하는 염원이 있었을 것이며 그것이 지금 우리의 마음에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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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0/16 [08:35]  최종편집: ⓒ 뉴스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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