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생활, 꾸미는 게 아닙니다"

[인터뷰]한국인 최초 오스트리아 국명방송 세계 음악가에 등재된 정승용 지휘자

여천일 기자 | 기사입력 2015/11/06 [08:50]

"음악은 생활, 꾸미는 게 아닙니다"

[인터뷰]한국인 최초 오스트리아 국명방송 세계 음악가에 등재된 정승용 지휘자

여천일 기자 | 입력 : 2015/11/06 [08:50]

작곡가 겸 지휘자 정승용. 그는 안양대 작곡과를 졸업 후 폴란드 국립쇼팽음악원에 무시험 입학(석사 취득),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 최고 연주자 과정(박사)에 초빙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대 재학 시 유럽을 대표하는 Edo Micic 교수 사사 지휘자로서 활동 시작, 세계5대 음악제 중 하나인 Steirischer Herbst 세계 현대음악제에서 아시아 작곡가로서는 최초로 ‘최고 작곡가’로 선정됐으며 한국인 최초로 오스트리아 제1국영방송 ORF1 선정, 세계음악가에 등재된 인물이다. 한국에 돌아와 있는 그를 뉴스다임이 만났다.<편집자 주>
 

작곡가이자 지휘가로서 음악분야의 길을 가게 된 계기는?

-어릴 적 피아노를 공부하신 어머니께서 학생들 레슨을 하셨는데, 저는 피아노도 없던 시절, 종이 건반으로 피아노 연주하는 흉내를 내고, 어깨너머 어머니께서 피아노 레슨을 하는 것을 보면서 어린이 찬송가를 펼쳐 놓고 독학으로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다. 

어머니께서는 신기하게 쳐다 보셨으나 한 번도 가르치려 하지는 않으셨다. 그냥 즐기게 두신 것 같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콩쿠르를 혼자 준비해 출전해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게 됐다. 음악에 재능이 있었고 음악이 너무 좋아 예고로 진학해 본격적인 음악가의 길을 가려 했으나 법대 출신이신 아버지께서 4대 독자의 법대 진학을 강요하셔서 일반고로 진학했다.

‘음악’은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러나 음악이 미치도록 하고 싶어 고3 여름방학 때 재수하지 않는 조건으로 음대 진학 준비를 해서 매우 짧은 준비 과정을 거쳐 음대에 진학하게 됐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많이 알려진 분으로 알고 있다. 남들보다 오랜 기간 유학생활, 해외 활동을 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 해외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나?

-한국인은 아리랑을 들으면 절로 어깨춤이 나오고, 서양인은 왈츠를 들어야 춤이 나온다. 음악 교육은 기술 중심 교육이 아니고, 음악에 대한 철학을 전수하는 것이며 음악 자체를 즐기게 해 주는 것이어야 한다. 모짜르트 변주곡을 연주하려면 당시 작곡이 된 시대상을 이해해야 하고 당시 지어진 건축물(성당)도 가서 보고, 살던 주변 공원에 가 앉아 있어 보고 카페에 혼자 커피 시켜 마시면서 작곡가의 입장이 돼 봐야 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현지에서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우선은 폴란드로 유학을 떠났다. 그러나 언어문제로 학습이 깊이 안 돼 아쉬웠다. 독일로 가게 되면서 독일의 한 목사의 집에 거주하면서 완벽하게 언어를 습득했다. 언어 습득 후 독일에서는 교수와 많은 대화를 통해 철학과 사상을 교류할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현지의 인맥 형성과 영재 교육 활동을 하라는 오스트리아 교수님들의 권유로 도나우 뮤직(기획사)을 설립해 운영했다. 이 즈음 뉴스 통해 일본의 ‘독도망언’사건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분노를 느껴 언젠가 발표하리라 마음 먹고 있던 ‘이육사’ 선생의 ‘독백(MONOLOG)’을 모티브로 작곡을 했었는데 마침 세계적 권위가 있는 오스트리아의 ‘현대음악제’에 출품 기회가 왔다. 

이 음악제에서는 전 세계 유망 신인 작곡가의 작품 4곡을 선정 하여 연주를 하게 되는데 거기에 뽑혔고 더욱이 ‘최고의 곡’으로 선정 되었다. 오스트리아 제1 국영 방송(ORF1)에 의해 유럽 전역으로 연주 실황이 중계됐다. (유튜브 ; https://youtu.be/n7EwEf0jo8k) 

이때부터 작곡가로서 독립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 외에도 외국인 최초로 오스트리아 전체 기독 음악 총감독/지휘자를 역임했고, 70년 전통의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Mannergesangverein 합창단 상임지휘자,  빈소년 합창단과 함께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Spatzen Chor(어린이 합창단) 상임지휘자를 역임했다.

▲ "음악은 먹고 마시는 것이다. 생활이다. 억지로 꾸미면 안 된다." 음악을 즐기고 사랑하라는 정승용 지휘자겸 작곡가     ⓒ 뉴스다임


 
작곡과 지휘 활동을 같이 하고 있다고 들었다. 작곡과 지휘에 대해 남다른 생각이 있을 것 같다.

-작곡가는 작품을 쓰고 나서 초연을 하는데 이때 맘에 안 들면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다.그래서;작곡가는 넓게 길게 생각할 수 있다. 지휘자는 그 순간, 연주시간 안에 모든 것이 끝이 나고 결정이 된다. 작곡가와 지휘자는 어쩌면 정반대의 특성을 갖고 있다. 

작곡가는 어머니고 지휘자는 아버지다. 작곡가는 음악을 세상에 내놓는다. 여자들의 출산과정과 같이 해산의 고통을 통해 곡을 탄생시킨다. 출산 후는 아버지가 잘 자라게 해 주는 것, 그것이 아버지 역할이다. 작곡가 의도대로 곡이 제대로 연주가 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지휘자(아버지)의 역할이다 작곡과 지휘를 병행하면서 이 양단의 세계에 대해 많이 이해할 수 있어 음악에 대한 접근에 유리한 점이 많다.

작곡, ‘창작의 고통’이 큰데, 작곡을 할 때 영감을 얻기 위해서 여행을 한다거나 하는 자기만의 방법이 무엇인가?


-창작하는 사람과 연주자는 음악하는 사람이지만 창작자는 시각이 달라야 된다. 창조성은 타고나야 되는 부분도 있다. 산책하다가 영감이 떠올라 막 작곡해보고 싶다. 테마(동기)는 영감이 있어야 잡을 수 있다. 무엇으로 곡을 쓸 것인가, 테마가 정해지면 악기구성, 연주방법이 설계돼야 하고 논리를 세워야 한다 

이때부터 영감의 세계가 아니라 말 그대로 작업(Arbeit)의 영역이다.실제로 유럽에서 공부할 때 교수들이 작곡(Composistion)이란 표현 대신 작업(Arbeit)란 표현을 많이 쓴다. 화성도 만들어야 되고 내 논리로 내 말이 되게 해야 한다. 음에도 ‘도’와 ‘레’ 사이도 반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5단계까지 세분화할 수 있다. 

수치열 음열 등 짜는 것 이것이 작업(Arbeit)이다. 예를 들어 천지창조를 작곡한다고 하면 '7'이라는 숫자를 놓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만의 화법으로 완성된 논리를 짜야 되는 것이다.  감으로, 느낌으로 작곡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설계도에 의해 작품이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조만간 의미 있는 공연을 한다고 들었는데 어떤 공연이며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19일 오전11시부터 수원의 SK아트리움 대공연장에서 수원시립합창단의 객원 지휘자로 음악회 ‘놀러와’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때 ‘진짜 음악’을 표현하고 싶다. 음악에도 리듬과 법칙이 있고 음악이 가는 ‘길’이 있다. 길을 열지 않고 마디마디 예쁜 박스로 포장을 하면 어디서나 똑같은 음악이 되어 버릴 소지가 있다. 단절된 채 포장 되지 않은 음악, 그 스스로 길을 따라 흐르는 그런 음악의 길을 전달해주고 싶다.

음악이란 결국 무엇인가?

-유럽 유학시절 교수님(폴란드 코톤스키 교수, 폴란드 대표 작곡가)께서 묻더라 ‘음악이 뭐라고 생각하냐?’ 거창하게 대답하고 싶어 머뭇거리면서 멋있게 표현하려고 말을 지으려 하니까 껄껄껄 웃으시더니 "음악은 먹고 마시는 거다"라고 한 마디 해 주셨다. 처음에 의미를 몰랐는데 이제는 ‘음악은 생활이다. 꾸미는 것이 아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음악은 꾸미려고 하면 안 된다. 또 작곡가의 작품만 분석하려 말고 당시 작곡가가 처했던 상황, 작곡가가 연애를 했었는지 그렇다면 누구와 연애를 했는지 원래 작곡가가 의도한 바를 찾고 표현해내야 한다. 5일을 굶어 배고픈 사람들은 사람의 개성마다 그 표현방식이 다를 수 있다. 단 ‘배고픔’은 명확히 전달해줘야 한다. 

청중에게 잘 보이려면 서커스 광대가 되는 것이다. 청중과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가 연주하려는 작품에 우선 내가 먼저 감동을 받아야 된다. 청중 모두에게 기립박수를 받으려 말고 한 두 명 이라도 정말 감동 받아서 눈물 흘리며 감정을  주체하지 못 해 일어서지도 못 하게 만드는 그런 연주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음악 후배들에게 해 줄 조언이나 선배로서 바라는 점이 있다면.


-"음악을 진짜 하고 싶어서 하는 거냐?"부터 묻고 싶다. 다음 "왜 하려는지?" 믈어봐야 한다. 겉멋이 들어 하려는 사람들은 말리고 싶다. 음악은 단기간의 노력으로 되는 건 아니다. 음악은 하는 만큼 되는 게 아니고 아무리 연습하고 또 연습해도 변화가 없다. 폭이 아주 아주 넓은 계단이라 보면 된다. 하다 하다 보면 어느 새 조금 높아져 있다.

그리고 우선 ‘인간’이 돼야 한다. 미성숙한 인간으로 무대에 오르면 그냥 드러난다. 무대에서는 속일 수 없다. 음악은 우러나온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광대가 되지 말아야 한다. 테크닉 보다 음악을 많이 듣고 그 외의 다양한 문화도 많이 접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하고 언어 습득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음악 자체를 정말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인터뷰 시간 내내 그가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고 또 누구보다 ‘음악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한국에서 펼칠 음악 활동이 한국의 음악계에 신선한 센세이션을 일으킬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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