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에서 가장 놀라운 소신공양 '틱꽝득 스님'

박현서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1/05/19 [00:02]

세계사에서 가장 놀라운 소신공양 '틱꽝득 스님'

박현서 칼럼니스트 | 입력 : 2021/05/19 [00:02]

베트남 독립의 영웅 호치민이 이끄는 베트남 민주 공화국(당시까지는 베트남 독립을 위해 좌우합작을 한 상태였다)은 베트남을 백 년 동안 식민 지배를 했던 프랑스를 상대로 1954년 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격멸시켰다. 

 

프랑스는 군사적으로 더이상 전투를 지속할 수 없었고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자국 내 양식 있는 국민들의 평화운동으로 베트남에서 철수했다.

 

미국은 인도차이나반도의 공산화를 염려해 프랑스의 뒤를 이어 베트남 남부에 프랑스의 꼭두각시였던 바오다이를 대신해 CIA가 발탁한 ‘월남의 이승만’으로 알려진 응오딘지엠(고딘디엠으로 불리기도 한다)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를 1955년 10월 수립했다.

 

응오딘지엠은 유권자보다 투표자가 많은 선거에서 98%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이 되었다. 지엠은 치안유지법을 제정해 모든 형태의 반정부 운동을 무차별 탄압했다.

 

그는 게릴라 지역을 점령하면 빈농의 토지를 다시 빼앗아 지주에게 돌려주는 ‘뒤집힌 토지개혁’을 실시해서 농민들의 저주를 받았고 장교들은 군 예산을 착복했으며 관리들은 탈세를 눈감아준 대가로 재산을 모았다.

 

이 모든 상황이 장제스가 마오쩌둥에게 패해 중국이 공산화되었을 당시와 흡사했다. 설상가상 지엠 군대 장교들은 대부분 프랑스 식민정부에 복무한 경력을 가진 매국노들이어서 베트남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었다. 

 

그는 ‘칸라오’라는 5인 1조 테러조직을 만들어 정부, 군, 야당, 사회단체 각 분야에 침투시켜 사찰, 음모, 테러를 감행했다. 가톨릭 교도로 구성된 이 조직은 특히 불교 탄압으로 악명을 드높였다. 게다가 불교 탄압 정책에 맞서서 저항하던 승려들을 무차별 진압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1963년 5월 8일은 부처님 오신 날 2527주년인 만큼 남베트남 전역에서 일련의 축하 행사가 열렸다. 베트남은 전통적으로 국민의 80% 이상이 불교 신자였고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가톨릭이 개신교보다 먼저 선교가 되었지만 인구의 10%만 가톨릭 신자였다.

 

집안 자체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응오딘지엠은 불교 행사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종교적인 상징을 내세우고 거리 행진하는 것은 법에 저촉된다며 석가탄신일 축하 행사를 진압할 것을 경찰에 명령했다. 수십여 명의 스님들이 경찰이 휘두른 흉기에 맞아 숨지거나 다쳤고, 많은 스님들이 연행돼 감옥에 갇히게 됐다.

 

수년간 무문관에서 정진했던 틱꽝득 스님은 독재 정권의 불교 탄압에 대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고, 고통받는 스님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스님은 베트남 불교를 위해 소신공양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이 같은 뜻을 당시 베트남 불교본부에 전했다. 상좌들과 주변 스님들이 이를 말렸으나 스님의 큰 뜻을 꺾지 못했다.

 

1963년 6월 11일 승려들의 침묵 가두 시위가 있었던 당시에, 그는 주변 승려들의 도움을 받아서 사이공에서 가부좌를 틀었다. 머리 위로 휘발유가 부어졌고, 스님은 성냥불을 켰다. 순식간에 온몸에 불길이 휩싸였다. 그리고 사진과 영상이 특보에 호의, 속보를 타고 베트남은 물론 전 세계로 일파만파 전파되었다.

 

스님은 몸이 다 타들어 갈 때까지 끝끝내 가부좌를 풀지 않고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통증 중 가장 고통스럽기로 유명한 작열통을 죽음에 이를 때까지 겉으로 표정을 드러내지 않고 견딘다는 사실은 인간을 초월한 인내력이 아니면 불가능하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작열통으로 죽을 때 엄청난 고통으로 심장이 멈추는 쇼크사를 한다. 문지방에 발가락이 부딪혔을 때에도 저절로 비명이 나오고 얼굴이 찌푸려지는데 온몸이 지글지글 불타고 있는 상황에서 신음 한 번 내지 않고 얼굴을 태연하게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필설로 형용할 수 있을까!

 

소신공양을 감행하기 전날 제자들에게 “내가 만약 앞으로 넘어지면 흉한 것이니, 그때는 모두 희망을 버려라. 그러나 뒤로 쓰러진다면 결국 우리가 승리해 평화를 맞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고 정말로 꽝득 스님은 뒤로 넘어졌다.

 

이것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인간의 근육은 구부리는 근육이 펴는 근육보다 많기에 불에 타 죽은 시체는 근육들이 수축해서 자연스럽게 안으로 오그라들기 때문에 전부 앞으로 넘어진다. 표현하기조차 힘든 고통 속에서 인간을 초월한 의지로 최후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서 몸을 펴고 뒤로 넘어져 열반한 것이다.

 

이 엄청난 광경에 경찰들도 넋을 잃고 멍하니 서서 스님을 바라보았고 주위의 승려들은 일제히 절을 올렸다. 그리고 승려들을 감시하던 경찰들도 감시를 멈추고 같이 그에게 절을 올렸다.

 

주민들의 동요를 의식한 디엠 정권은 타다 남은 스님의 법구를 서둘러 수습해 6시간 동안 태웠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스님의 심장은 타지 않았다. 연료를 보충해 두 시간을 더 태워도 스님의 심장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당황한 디엠 정권은 이번엔 황산을 뿌렸지만 스님의 심장은 녹지 않았다. 스님의 심장은 지금도 하노이국립은행에 보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이었던 응오딘지엠은 독신이었기에 의전상 그의 동생 응오딘누의 부인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었다. 의전상 퍼스트레이디인 마담 누는 미국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틱꽝득의 죽음을 ‘땡중의 바베큐 쇼’라는 발언을 해 베트남 국민과 존 F.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의 분노를 샀다. 이런 발언으로 마담 누는 서방에서 ‘드래곤 레이디’라는 악명을 얻었다.

 

틱꽝득 스님의 소신공양으로 반정부 시위는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틱꽝득 스님의 뒤를 이어 소신공양을 하는 스님들이 줄을 이었고, 시민과 학생, 공무원들도 반정부 시위에 가세해 디엠 독재 정권을 압박했다. 여기에 디엠 정권을 보호하던 미국도 틱광득 스님의 소신공양에 충격을 받고, 반미감정의 확산을 우려해 지지를 철회하고 나서면서 디엠 정권은 결국 붕괴됐다. 

 

당시 한국의 정부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터라 남베트남의 세세한 사정을 국민에게 알릴 형편이 못되었다. 그래서 틱꽝득 스님의 소신공양을 단순히 남베트남 정정의 불안으로만 소개하고 중국과 베트남의 공산화를 가져온 정부의 반개혁 정책, 부정부패와 쿠데타를 자세히 알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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