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기획] 자유수호의 역사가 숨쉬는 '인천상륙작전 기념관'을 가다

고현아 기자 armian23@hanmail.net | 기사입력 2021/06/11 [19:34]

[6.25전쟁기획] 자유수호의 역사가 숨쉬는 '인천상륙작전 기념관'을 가다

고현아 기자 armian23@hanmail.net | 입력 : 2021/06/11 [19:34]

6월이 오면 우리에겐 잊지 못하는 사건이 있다. 민족상잔의 비극, 바로 6.25전쟁이다. 

 

1950년 6월 25일 김일성은 조선인민군을 앞세워 남쪽으로 쳐들어왔다. 6월 29일 서울이 함락되고 계속 아래쪽으로 밀리며 9월 15일 우리 군은 낙동강까지 후퇴하게 된다.

 

▲ 인천 상륙작전이 진행되기 전 상황과 휴전되기까지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 뉴스다임


9월 15일 UN군은 인천에 상륙해 북한군을 뒤에서 공격, 적진의 허리를 끊는 작전을 실시한다. 이 작전이 '인천상륙작전'이다.

 

인천상륙 작전은 3단계로 이루어졌다.

 

1단계는 '월미도 점령'으로 9월 15일 새벽 한미해병대는 인천 월미도와 주변 두 곳에 상륙하기 시작했고, 작전개시 2시간 만에 점령하게 된다.

 

2단계는 '인천항 주변 확보'. 월미도에 상륙한 한미해병대는 인천을 점령한 후 김포비행장과 수원을 확보하게 된다.

 

3단계는 '서울 수복'인데 한미해병대는 19일 한강을 건너 마침내 26일 서울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함으로써 인천 상륙작전을 성공하게 된다.

 

이 작전은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하고 국군의 낙동강방어선에서 반격의 계기를 주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또한 서울 탈환의 성공은 우리군과 연합군의 사기를 증진시키고 북한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게 됐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는 역할을 하게 된 인천에는 인천상륙작전의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또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참전용사들을 기리기 위해 인천상륙작전 기념관을 건립하게 된다.

 

▲ 인천상륙작전 기념관 입구 모습   © 뉴스다임

 

인천상륙작전 기념관 입구에는 참전용사들의 모습이 새겨져 웅장함을 더한다.

 

▲ 기념관 한쪽 벽면엔 6.25 전쟁 참가국의 국기들이 펄럭이고 있다.  © 뉴스다임


기념관의 한쪽에 세워진 국기들. 타국의 자유를 위해 참전용사들을 보내준 각 나라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 자유수호의 탑  © 뉴스다임

 

▲ 코로나19로 영상관은 닫혀 있다.  © 뉴스다임


건물 양쪽에 영상관 입구와 전시관 입구가 있는데 코로나19 영향으로 영상관은 닫혀 있다.

6.25 전쟁시 각 군의 역할에 대해 전시돼 있다.  © 뉴스다임

 

▲ 인천상륙작전 당시 UN 연합군이 사용하던 물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 뉴스다임

 

인천 상륙작전 당시 UN연합군이 사용하던 물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 우리나라의 국기와 맥아더 장군의 흉상도 전시돼 있다  © 뉴스다임


곳곳에 우리나라와 연합군들의 모습, 인천 상륙작전 당시 연합군의 총 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의 활동모습들이 전시돼 있다.

 

▲ 당시 UN군으로 참가했던 나라들의 참전상황을 보여준다.  © 뉴스다임

 

▲ 자유공원에 있는 맥아더 장군의 동상  © 뉴스다임


인천 중구에 위치한 자유공원 정상에는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기 위해 한미수교백주년 기념탑과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있다.

이름도 모르는 나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젊음과 목숨을 기꺼이 내어준 참전용사들. 그들의 고귀한 희생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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