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세계적인 여성 실내악단 '서울 아카데미 앙상블' 손명자 단장

"50년 넘는 긴 세월, 악단을 끌고 온 비결은 '바보'가 답인 것 같다"

여천일 기자 rahnam@naver.com | 기사입력 2021/08/06 [19:45]

[인터뷰] 세계적인 여성 실내악단 '서울 아카데미 앙상블' 손명자 단장

"50년 넘는 긴 세월, 악단을 끌고 온 비결은 '바보'가 답인 것 같다"

여천일 기자 rahnam@naver.com | 입력 : 2021/08/06 [19:45]

창단한지 50년을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서울 아카데미 앙상블'은 한국 최초의 전문 여성 스트링 오케스트라로 출발해 현재까지 300회를 넘는 정기 연주와 해외 및 지방 순회 연주, 청소년 연주, 봉사 연주 등 다양한 연주활동을 해오며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여성 실내악단으로 자리 매김했다. 악단의 창단 멤버인 현역 손명자 단장을 뉴스다임이 만났다.

 

세계적인 여성 실내악단으로 자리매김한 '서울 아카데미 앙상블' 손명자 단장  © 뉴스다임

 

- 서울 아카데미 앙상블은 어떤 악단이며 어떻게 시작됐나? 

 

 한국 최초의 전문 여성 스트링 오케스트라다. 현악을 전공한 여성 멤버만으로 구성된 앙상블답게 섬세하면서도 독특한 음색으로 높은 수준의 클래식 음악 연주를 지향한다.

 

1964년, 음악 대학에 입학했는데 연주가 하고 싶어도 어떤 형태의 연주 단체가 없었다. 목이 마르면 샘이라도 판다는 일념이 간절한 즈음, 대학 2학년 때 매년 개최하는 숙명 음악대학 연주가 당시 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됐는데 이 중 한 프로그램으로 현악 4중주단의 멤버가 되어 모차르트 콰르텟곡을 연주했다. 그 후 앙상블 지도교수이신 고 박태현 교수와 의기투합해 '서울 여성 스트링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게 됐다.

 

1966년, 고 박태현 교수와 서울 시립교향악단 여성 멤버가 주축이 되어 29명의 여성 전문 음악인들로 공식 창단, 그 해 6월 29일 '서울 여성 스트링 오케스트라' 명칭으로 명동 국립극장에서 창단 연주를 했다. 실내 음악이 생소했던 1960년대 여성전문 실내악단의 출현은 당시 클래식 음악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으며 특히 여성 연주자들만이 들려줄 수 있는 섬세하고 깊이 있는 연주로 실내악의 묘미를 전파하며 국내 실내악 연주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

 

'서울 아카데미 앙상블' 정기 공연 장면 © 뉴스다임

 

-악단의 단원들은 어떤 사람들로 구성돼 있나?

 

 단원 한명 한명이 음악에 대한 열정이 대단할 뿐 아니라 수십 년간 국내외 음악대학에서 연주 기량을 닦아온 재원들이다.  다수의 단원들이 음대나 예술학교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교수로 있으며, 실내악 연주를 위한 꿈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다.

 

초기에는 시립교향악단 단원들과 함께 연주를 해왔지만 지금은 우리만의 멤버로 재구성됐다. 정해진 급여는 없지만 아무나 단원으로 뽑지는 않는다. 음악에 대한 열정과 실력, 그리고 인성을 매우 까다롭게 검증한다. 음악의 하모니 이전에 연주하는 사람들 간의 화합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단원들 모두가 가족 같은 연주자들이다. 

 

- 창단 50년을 넘었다. 놀라운 기록이 아닐 수 없는데 지금까지 유지해온 비결은?

 

► 창단 연주 이후 계속된 연주를 위해 경제적인 면에서 수많은 애로가 있었다. 그간 재정문제 해결을 위해 대기업에 소속되라는 제의도 받은 적이 있으나 어렵더라도 자유로운 연주활동을 위해서, 제약받기를 원치 않아 고집스럽게 지금까지 독립적으로 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예술은 돈과 너무 가까워지면 그 본질이 흐려지고 상업적인 예술로 빠져들기 쉽다. 

 

“진인사대천명” 내 좌우명이다. 이를 토대로 끊임없이 노력해 오는 동안 많은 기업체와 문예진흥원 등에서 지원금을 받아 지금까지 중단 없는 연주 단체로 장수하고 있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더욱더 훌륭한 연주 단체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또한 비결이라 하겠다. 

 

1984년, 악단의 명칭을 바꾸어 현재의 '서울 아카데미 앙상블'로 연주를 하고 있는데 사실 재정문제 이외에도 어려움들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지경이지만 음악에 미쳐 여기까지 온 듯하다.  또한, 힘들고 지칠 때마다 옆에서 격려해주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 남편의 도움이 큰 힘이 되었다. 나에게는 가장 큰 후원자이다. 

 

창단 50주년 기념 연주회 직후 전화가 왔다.  20년 넘게 단의 중진 멤버로 함께 연주활동을 해왔던, 내가 가장 사랑하던 멤버 중 하나이며 지금은 S대에서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Y교수의 목소리였다.  “단장님! 연주 대성공이에요. 수고 많으셨어요. 단장님은 정말 '바보'세요“ 

 

'바보'란 단어에 잠시 멍했지만 그 의미를 떠올린 순간 가슴이 찡해왔다. '바보'라는 단어에 함축된 의미를 우리는 서로 알고 있었다. '바보'가 아니고는 긴 세월동안 갖은 고난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냐는 것이었다. 그렇다! 50년 넘는 긴 세월을 여기까지 단체를 끌고 온 비결은 '바보'가 답인 것 같다.

 

- 악단이 오랜 역사와 놀라운 스토리텔링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듯한데 오히려 해외에서 인기가 많다고 들었다.

 

 애초부터 오직 좋은 연주만을 위해 매진하다보니 홍보를 위한 홈페이지, 블로그 하나 만들지 못했다. 그럴 여력이 없었다는 것이 솔직한 답변일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음악 연주에 대한 순수한 열정은 특히 해외 무대에서 더욱 그 진가를 발휘하며 1991년 ‘대만정부 초청연주’를 시작으로 ‘홍콩정부 초청연주’, ‘중국 광동국제예술제 초청연주’, ‘미국 샌디에이고 오렌지 카운티 LA지역 순회연주’, ‘오스트리아 아이젠슈타트 하이든 페스티벌 초청 순회연주’ 등 다양한 해외초청 연주회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실내악단으로 발전했다. 

 

특히 2005년도에는 스페인 공식초청으로 보름간 10여회가 넘는 격조 높은 전국 순회연주를 선보였을 당시 스페인 음악계와 언론으로부터 실내악의 진수를 보여주었다는 극찬을 받아 3년 뒤에 스페인 앙코르 초청으로 11개 도시를 순회 연주를 했다.  2012년에는 ‘한오 수교 120주년 기념 비엔나 초청연주’를 성공적으로 마치며 현지 언론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2015년에는 중국 상해시정부 초청을 받아 상해 동방예술센터를 비롯해 4개 도시에서 연주를 가지는 등, 호평을 받았고, 명실상부한 글로벌 연주단체로 자리 매김했다. 연주단체는 수준 높은 연주를 하는 것이 바로 홍보이고 좋은 연주, 훌륭한 연주는 홍보가 없이도 아름다운 선율을 타고 세계로 울려 퍼지며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준다.

 

- 그동안 해온 많은 연주회 중에 특히 인상 깊은 연주는?

 

► 첫째로, 국내 연주 중에는 역시 ‘창단 50주년 기념연주’가 가장 인상 깊다. 청중들로 예술의 전당 콘서트장을 꽉 메운 연주를 상상도 못했는데 단원들과 함께 갖은 기량을 다해 정말 열정적인 연주를 이루어 냈다. 그 감동은 참석했던 모든 청중들과 함께 하며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창단 50주년의 결정체이기에 손색이 없다고 생각된다.

 

둘째로, 해외 연주 중 2015년에 있었던 ‘중국 상해시정부 초청연주’가 기억에 남는다. 상해는 세계적인 도시로 세계적인 수준의 연주단체가 많이 찾아온다. 우리도 국가를 대표하는 마음으로 연주에 정성을 다했다.

 

첫 연주부터 마지막 4번째 도시 연주까지 열정을 다한 연주로 중국 클래식 음악 청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예상치 못한 성과에 우리를 초청한 시정부 주최 측도 놀랐다고 실토했다. 우리의 연주 실력과 자기네 청중들의 반응까지 모두 상상 못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덕분에 성대한 대접을 받고 돌아왔다. 단원들도 영원히 잊지 못할 연주로 기억한다.

 

마지막으로 최근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연주로는 팬데믹으로 계속해서 두 번의 연주가 무산되고 사태의 엄중함 속에서도 연말 송년 연주를 무관중 연주로 강행했다. 악단의 역사상 초유의 연주 홀이 아닌, 연습실을 무대로 꾸민 연주였다. 무관중 연주였으나 첫 프로부터 얼마나 열정을 다하는지 눈물겹도록 감동 주는 연주였다. 마지막 앵콜곡이었던 X-mas 캐롤이 스러져가는 연말의 분위기에 따스하게 울려 퍼졌다. 팬데믹이 가져다주는 특별무대의 연주! 그 또한 아름다운 연주로 기억된다.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 나이도 있고 이것저것 신경 쓰기도 쉽지 않아 은퇴을 하려고 하나, 단원들이 극구 만류한다. 내가 하는 일이 별로 없어도 단원들이 원하고 건강이 허락한다면 앙상블의 '바보'로 남아 언젠가 시간을 내어 '서울 아카데미 앙상블'의 역사를 회고록의 형태로 남기고 싶다. 한국 클래식 악단의 역사적 의의 등을 떠나 내 모든 삶의 여정, 내 삶 자체였기에.

 

그리고 올해 12월 예술의 전당 IBK 챔버홀 공연계획이 있다. 코로나로 지친 국민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무대로 인사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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